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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지속(The Persistence of Memory) : 살바도르 달리

by honeykbongbong 2022. 11. 28.

살바도르 달리 <기억의 지속, 1931>

녹아내린 시계, 전 세계의 주목을 받다

가로 33cm, 세로 24 cm의 작은 캔버스에 그려진 이 작품을 보고 있으면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바닷가 근처의 작은 시골마을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사막의 한가운데에 서있는 것 같기도 하다. 눈에 띄는 건 흐물흐물하게 늘어져 있는 3개의 시계이다. 하나는 나무상자 같은 것에서 흘러내리고 있고, 다른 하나는 나무상자를 뚫고 나온 듯한 앙상한 가지에 빨래처럼 축 늘어져 있고, 마지막 하나는 널브러져 있는 죽은 생명체 같은 것에 걸쳐 있다. 보통 시간은 정확하고 딱딱한 개념으로 여겨지지만 이 작품에서 그려진 시계는 상대적이며 유연한 시간의 모습을 상징한다고 해석된다. 세 개의 흘러내리는 시계가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을 나타낸다고 해석되기도 한다. 나무 상자 위에는 멀쩡하게 보이는 시계가 있는데 개미들이 우글우글 몰려있어서 시간을 확인할 수 없다. 옆에 있는 흘러내리는 시계 위에는 파리가 앉아있고 신기하게도 파리의 그림자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있다. 이 그림을 그린 화가는 그의 다른 작품에서 시간의 지남을 개미들로 훼손과 부패함을 파리로 표현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이는 시간의 흐름과 제한된 시간 개념을 갖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이야기하는 듯하다.한편, 해가 지는듯하게 또는 이제 막 뜨는듯하게 보이는 하늘 아래에는 거친 바위 절벽과 푸른 바다가 보인다. 이는 이 그림에서 유일하게 볼 수 있는 명확하고 사실적인 부분으로 작가의 고향인 스페인의 카탈루냐 해안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고 한다. 그림의 중앙에 위치한 생명체는 혓바닥을 축 늘어뜨리고 죽어있는 말 같기도 하고 눈썹이 길고 코가 아주 오똑한 사람의 얼굴 같기도 한데 이는 작가 자신을 표현했다고 해석된다. 여러 부분에서 기묘한 느낌을 주는 이 그림은 초현실주의의 대표 화가인 살바도르 알리가 그린 <기억의 지속>이다. 1932년에 이 작품이 처음으로 뉴욕에서 공개되었을 때 놀라운 상상력과 사실적인 표현력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고, 작품의 의미에 대해 수많은 비평가들이 추상적인 해석들과 추측을 내놓았다. 그의 작품 해석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그 정답을 알고 있을 살바도르 달리는 재미있게도, 단지 까망베르 치즈를 먹고 느낀 환상을 그림으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살바도르 달리, 천재인가 사이코인가? 

미술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미켈란젤로, 피카소 등 천재로 불리던 화가들이 많이 있다. 살바도르 달리 역시 초현실주의를 가장 잘 표현한 화가로 천재라 불리며 살아있는 동안 많은 부와 명예를 축척했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살바도르 달리는 자기 자신이 천재임을 확신했고, 그런 자신을 너무나 사랑한, 아니 숭배한 괴짜로 불린 사람이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면 자신이 살바도르 달리라는 사실이 너무나 행복하다고 외쳐댔다고 한다. 어려서 미술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그는 스페인의 왕립 미술학교에서 공부했지만 너무나 기이한 행동들을 자주 보여 결국 퇴학을 당하게 된다. 후에 파리로 옮겨 그곳에서 거장 피카소, 디자이너 코코샤넬, 시인 폴 엘뤼아르 등 초현실주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이는 그가 초현실주의의 길로 본격적으로 들어서게 되는 이유가 된다. 그가 그림을 그리는 방식은 독특했는데 바로 '환각'을 이용한 것이었다. 누군가 그에게 마약을 하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자신이 마약 그 자체인데 무슨 마약이 필요하냐고 대답할 정도로 환각상태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이었다. 살바도르는 잠이 들기 직전 또는 밤이 든 직후, 그려지는 환상을 캔버스에 그려내었다. 그 방식 또한 특이했다. 그는 어떤 물체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가 그 물체의 변형이 보이면 바로 캔버스에 옮겨 그렸다. 또한 숟가락을 손에 들고 있다가 잠이 들어 숟가락을 떨어뜨리면 그 소리에 깨어나 꿈에서 본 바로 그 장면을 그리곤 했다. 그의 뛰어난 상상력과 표현력은 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이 되었고 미술계뿐만 아니라 패션, 건축, 영화, 시 등 여러 예술분야에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그와 함께 작업한 사람들은 그의 괴팍함도 감수해야 했다. 자신의 생각과 조금만 다르거나 자신의 작품이 조금이라도 변형되면 물건을 집어던지거나 작품을 찢어버리거나 상을 엎어버릴 만큼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그였기 때문이다.  

 

초현실주의, 현실을 초월한 환상의 세계  

사막이 너무 더워서 시계도 녹고, 말도 말라죽었나 보다. 

내가 중학교 때 처음으로 교과서에서 <기억의 지속>을 보고 한 해석이다. 그때의 내 눈에는 이 작품이 특이하게 보이지도 무섭게 보이지도 않았다.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이 그림을 다시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상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다. 3개의 시계는 다 녹아내리는데 하나만 녹지 않고 개미들이 꼬여있다. 물체들의 서로 다른 방향으로 늘어선 그림자들을 보면 해가 한두개가 아닌거 같다. 살바도르 달리의 초상화로 보이는 저 생명체는 입체적이지 않고 껍질처럼 보이는데 그 아래에 무엇을 덮고 있는것일까? 궁금한것이 한두개가 아니다. 하지만 이 그림에 정답이라는 게 존재할까? 살바도르 달리는 자신이 본 환상을 그림으로 그려냈다. 사람의 무의식을 정의하고 해석할 수 있을까? 엄마의 자궁 속까지 기억한다는 그도 왜 이런 형상이 보였는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놀라운 것은 인간 스스로도 보지 못하고 심지어 인식하지 못하는 내면세계를 너무나도 생생하고 자세하게 그려냈다는 사실이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고 불가능 가능을 정의할 수 조차 없는 누군가의 세계를 눈으로 보다니 그저 경이롭게 느껴진다. 살바도르 달리는 학창 시절 성모 마리아를 관찰하고 그려보라는 선생님의 말을 듣고 저울을 그렸다고 한다. 또한 은행원이 자신의 수표를 먹어버릴까 봐 자신의 필요로 찾아간 은행에서 한참 동안 실랑이를 피우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자서전을 홍보하는 곳에 심장박동 기계를 들고 찾아가 책에 사인을 하는 동안 자신의 심장운동을 기록하여 그 기록지를 독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그의 괴상한 행동들은 주변 사람들에게는 이상했지만 그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고, 이렇게 그는 초현실세계를 살았다. 그는 죽고 없지만 그의 작품 속에는 여전히 그의 세계가 있고, 우리는 그곳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녹여버린 그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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