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너스, 태어나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비너스는 잘린 남근의 주변에 생긴 거품에서 탄생한 사랑과 미의 여신이다. 보티첼리는 바다에서 막 태어난 비너스가 조개껍데기를 타고 육지로 다가오는 모습을 그려낸다. 작품의 중심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주인공 비너스가 손과 머리카락으로 가슴과 음부를 가린 채 나체로 서있다. 그녀의 얼굴은 선명하고 아름다우며 체형은 불가능할 정도로 기울어진 어깨선을 포함해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루어진 10등신의 완벽한 비율이다. 길게 늘어뜨린 오렌지 빛의 풍성한 머리카락 또한 자연스러운 곡선을 그리며 비너스의 아름다움을 더욱 빛나게 한다. 그녀는 조개껍데기 위에 서서 밀려가는 파도를 따라 육지로 가고 있는데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나 때 묻지 않은 순수 그 자체의 얼굴을 하고 있다. 작품의 왼쪽에는 바람의 신으로 불리는 제피어(Zephyr)와 그의 품에 안긴 산들바람으로 불리는 오라(Aura)가 꽃바람을 불어 비너스를 육지로 보내고 있다. 한편, 육지에서는 계절의 여신들이라고 불리는 호래(Horae)중 하나가 꽃 그림이 잔뜩 그려진 망토를 들고 비너스를 맞이하고 있다. 이 작품은 철학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여겨지는데 이는 신성한 사랑을 비너스로 인격화 했다는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이 그림이 가장 아름다운 육체를 표현한 것이고 이를 보는 이들은 육체의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정신까지도 흠모하고 바라보게 된다고 믿었다고 한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은 현재 피렌체에 있는 우피치 미술관에 전시되어있다.
보티첼리 : 피렌체 최고 가문이 선택한 화가
당시의 화가들을 보면 그림을 배우기 위해 또는 다양한 작업에 참여하게 되어서 이곳 저곳 다양한 도시에 머물며 작업한 이들이 많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보티첼리는 시스틴 예배당의 벽화 작업 의뢰를 받아 피사에 머문 몇 날들을 제외하고는 피렌체의 한 마을에 꾸준히 머물며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이는 곡선의 아름다움을 이용하여 신비로우면서도 사실적인 그림을 그려내던 젊은 보티첼리를 일찌감치 알아본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티첼리는 메디치 가의 모임에 종종 참여하게 되었는데 그들이 사랑했던 신플라토닉 사상에 매료되었고 그의 그림에 담아내기 시작했다. 당대 최고의 가문이라고 여겨지던 메디치 가의 사람들은 대외적으로 그들의 부와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많은 미술작품을 구입하거나 후원했고 그들이 가장 사랑했던 화가가 바로 보티첼리였다. 덕분에 보티첼리는 여기저기를 떠돌지 않고 한 자리에서 꾸준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었지만 메디치 가의 영향력이 그의 그림에도 뻗어갔다. 예를 들면, 성서의 내용을 주로 그리는 종교화에서 뜬금없이 메디치 가의 주요 인사들이 얼굴이 등장한다던가 그리스 신화를 표현한 그림에서 메디치 가의 상징인 오렌지 나무 등이 등장하곤 했다.
이전에도, 앞으로도 오지않을 영원한 아름다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누구일까?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모나리자 일까? 아니면 역사에 없던 최고의 미녀로 엄청난 권력을 자랑했던 클레오파트라일까? 시대가 변함에 따라 미의 기준도 변한다. 키카 크고 눈이 큰 사람이 사랑받는 때가 있는가 하면 인형처럼 아담하고 귀여운 얼굴을 한 사람이 사랑받는 때가 있기도 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다양한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보이는 아름다움을 위해 많은 재산과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내면의 아름다움을 위해 외면의 아름다움을 버리는 사람들도 있다. 아름다움이라 일컬어지는 모든 형태의 것을 다 가진이가 있다면 그가 바로 비너스일 것이다. 그녀가 미의 신, 아름다움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많은 화가들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신인 비너스를 그들의 작품에 담으려 했고 비너스는 그림, 조각, 글, 영상 등 수많은 방법으로 표현되어왔다. 하지만 그중 보티첼리는 세상에는 없는 완벽한 아름다움을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방법으로 가장 근접하게 그려낸 화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그 속에 분명히 있는 바람에 날리는 꽃이나 드레스에 수놓아져 있는 꽃들, 바람의 신과 계절의 여신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저 이 공간에 나와 아름다움의 본질인 비너스만 서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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