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의 작품인 <아담의 창조>는 인류 최초의 인간인 아담이 생명을 부여받는 모습을 담고 있다. 미켈란젤로는 재능이 있고 자신의 일을 사랑했지만 그 때문에 평생토록 얽매인 삶을 살았다. 그는 인내를 감당한 자였고 그의 열매는 정직하게 맺혀 지금까지도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목차
- 아담, 생명을 부여받다
- 미켈란젤로와 얽매인 삶
- 인내를 감당한 자와 그의 열매
아담, 생명을 부여받다
분홍색 옷을 입은 인자해 보이는 백발의 노인이 오른손을 뻗고 있다. 그는 왼손으로 젊은 여성을 안고 있고 그의 주변으로 11명의 서로 다른 인물들이 뒤엉켜 있다. 노인의 손끝에는 젊은 남자의 손이 거의 닿아 있다. 작품의 왼쪽에 있는 젊은 남자는 실오라기도 하나 걸치지 않은 벗은 모습으로 백발의 노인을 향해 손을 뻗고 있다. 백발의 노인과 주변 사람들은 붉은 천으로 둘러싸여 있고 아랫부분으로 초록색의 긴 천이 내려와 있다. 젊은 남자는 푸른 초원처럼 보이는 곳에 편안하게 기대어 있다. 이 작품은 <아담의 창조>로 미켈란젤로에 의해 16세기에 그려졌다. 이는 인류의 첫 시작인 아담이 하나님에게 생명을 부여받는 장면이다. 미켈란젤로는 미술뿐만 아니라 해부학과 종교에도 관심이 많았고 그의 지성이 작품에 잘 녹아져 있다. 하나님과 주변 인물들을 둘러싸고 있는 빨간 천을 사람의 뇌로 해석하기도 하는데 이는 그 모양이 사람의 뇌와 매우 흡사하고 신경선이나 핏줄의 형태처럼 보이는 것들도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빨간 천을 자궁으로 초록색의 긴 천을 탯줄로 보기도 한다. 미켈란젤로는 이처럼 그림의 요소들을 통해 생명이 하나님에게서 인간으로 전해진다는 것과 신의 지성 또한 인간에게 전해진다는 것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다. 하나님의 왼쪽에 위치한 여성은 아담을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브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 작품은 성경에 표현된 인간의 창조를 가장 잘 표현한 그림으로 평가되며 현재 바티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미켈란젤로와 얽매인 삶
미켈란젤로는 귀족의 신분으로 태어났다. 귀족의 자녀로 부모의 기대를 받던 그가 그림을 그리겠다고 했을 때 그의 부모는 크게 반대했다. 당시의 화가는 부와 명예와는 거리가 먼 직업이었다. 그렇기 때문의 그의 부모는 집안에서 화가가 나온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했다. 그래서 미켈란젤로를 때리면서까지 공부를 시켜보려 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화가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고 13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미술 공부를 시작했다. 어린 미켈란젤로는 당시 피렌체의 최고 화가였던 도메니코 기를란다의 제자로 공부했다. 그의 천재성은 금방 드러났고 그의 스승까지도 어린 미켈란젤로의 실력을 부러워했다. 당시 많은 화가들과 미술품들을 후원하던 메디치 가문에서 그를 후원하기 시작했고 미켈란젤로는 수많은 위대한 미술품들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 학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천재였던 그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에게는 끊임없이 작업 의뢰가 들어왔고 이는 단순한 귀족들의 의뢰가 아닌 권력을 가진 교황들의 의뢰였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미술보다는 남의 의뢰에 의한 미술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고된 작업이 바로 <아담의 창조>가 포함되어 있는 <천지창조>를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에 그리는 일이었다. 이는 그의 라이벌이 교황에게 천정화를 그리는 화가로 미켈란젤로를 추천하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미켈란젤로는 주로 조각을 했다. 그는 천장에 그림을 그리는 일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추천했으나 이는 묵살당했다. 이후로 그는 4년의 세월 동안 성당의 천장에 매달려 그림을 그렸다. 초반에는 그림의 진척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보수도 받지 못했고 고된 노동의 연속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의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대작으로 꼽히는 <천지창조>를 완성해 냈고 자신이 천재임을 다시 한번 증명해냈다. 미켈란젤로는 90세가 될 때까지 끊임없는 요구 속에 쫓기듯 작품을 완성해야만 했고, 당대의 유명한 예술가들과 비교되어야만 했으며, 쉼터여야 했던 그의 가족은 끊임없이 경제적 후원을 요구했다. 결국 그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피렌체를 도망치듯 빠져나와 죽을 때까지 그곳을 그리워하며 로마에 살았다.
인내를 감당한 자와 그의 열매
유럽여행을 하다가 방문한 어느 성당의 높은 천장에 그려진 천장화를 본 적이 있다. 높이도 높이지만 평평하지도 않은 둥근 천장에, 게대가 한 시야에 들어오지도 않을 정도로 넓은 공간에 어떻게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까? 정말 신기했다. 높이 20m, 길이 41.2m, 폭 13.2m. 상상할 수 없는 크기의 그림이다. 미켈란젤로에게 천장화는 처음 해보는 작업이었다. 조각만 하던 그에게 천정에 그림을 그리라고 하다니 그의 라이벌은 한 번에 그를 패배시킬 방법을 찾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인내를 감당할 수 있는 자였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포기하지 않고 방법을 찾았다. 공중에 매달려서 그림을 그리는 일은 끔찍했다. 누워서 천장에 색칠을 하면 물감이 온몸으로 떨어졌고 계속 목을 뒤로 젖히고 불편한 자세로 작업을 해야 했기에 몸이 성한 구석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꾸준하고 차분하게 4년을 버텨냈다. 조금 먹고 마시고, 잠도 덜 자고, 신발에 살점이 달라붙을 정도까지 작업에만 몰두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누구도 비판할 수 없는 완벽한 대작을 완성해냈다. 그의 라이벌은 아마 그는 감히 겨루지 못할 대상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의 작품은 인류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작으로 매년 그의 작품을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시스티나 성당을 찾아온다. 하지만 미켈란젤로는 그때가 그의 인생에서 수도 없이 죽고 싶었던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이었다고 이야기했다. 예술가에게 인내란 무엇일까? 창작의 고통은 극심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인내를 감당한 자만이 달콤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 같다. 어린 미켈란젤로는 단지 그림이 좋았다. 그는 귀족의 신분을 포기하면서까지 그림 그리는 일을 선택했다. 평생 자신이 그리고 싶은 것들을 그리며 행복하게 살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선택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삶을 자유가 아닌 구속으로 바꾸었다. 그에게는 그 선택이 평생을 후회할 실수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가 살았던 고난과 역경, 좌절의 인생은 찬란하게 빛나는 아름다운 열매가 되었고,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도전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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