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로 시작된 대작의 이름 : 낮에 그려진 야간순찰
18세기, 렘브란트의 작품을 본 사람들은 캔버스에 그려진 어둠 속에서 분주하게 그러나 매우 단호하게 어딘가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이를 <야간순찰>이라 부르기 시작한다. 이것은 엄청난 오해의 시작이 된다. 이 그림이 그려진 건 그보다 훨씬 이전인 1642년. 렘브란트는 대위인 프란스 반닝 코크(Frans Banning Cocq)의 의뢰를 받는다. 그와 그가 이끄는 민병대 17명의 대원들을 포함하여 그룹 초상화를 그려달라는 것이다. 이는 당시 빛과 그림자를 이용한 인물의 사실적인 표현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던 그에게는 흥미로운 도전이 된다. 렘브란트는 그 시대의 전형적인 틀을 벗어나 새로운 형태의 그룹 초상화를 그려보겠다 결심하고 사람들을 일렬로 그리지 않고 역동적으로 그룹화하여 그려낸다. 어떤 이들은 빛 가운데 있고 또 어떤 이들은 어둠 속에 그려진다. 대원들의 표정과 자세는 모두 다르고 총을 점검하는 사람, 깃발을 휘두르는 사람, 드럼을 두드리는 사람 등 모두가 마치 살아있는 순간처럼 생생하다. 렘브란트는 극적 연출을 위해 실존하는 18명의 인물들 외에 상상의 인물 16명을 추가로 그린다. 작품이 완성된 후 이를 보호하기 위해 유약을 바른다. 그의 그림이 부대에게 보내지고 그때부터 시간이 흐르기 시작한다. 세월이 지남에 따라 유약은 점점 어두워지며 본래 그림에 어둠을 입히기 시작하고 18세기 사람들에게 공개될 때는 완전한 밤의 순찰로 변해있다. 이렇게 낮의 순찰이 야간순찰이 된 것이다. 사실, 이 작품의 진짜 이름은 <프란스 반닝 코크 대위의 중대>이며, 현재 암스테르담의 국립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렘브란트, 빛과 어둠의 마술사
렘브란트는 빛과 어둠을 그의 작품에 잘 녹여내기로 명성이 자자했던 화가였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보면 마치 한편의 연극을 보는 듯이 특정 부분에 스포트라이트가 주어져있다. 이는 물감의 농도에 따라 빛과 반응하는 정도를 이용하여 그림을 그리는 렘브란트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큰 특징이다. 그는 주로 그의 작품에서 어두운 부분의 비율을 높게 하고 밝은 부분의 비율을 적게 해서 극적인 명암 효과를 내었다. 이는 그가 생각하는 중심 주체에 따른 것으로써 이로 인해 그의 작품은 사람들의 호불호를 야기했다. 당시 사람들을 주제로 한 초상화에서 인물들은 보통 같은 중요도로 그려졌기 때문에 이에 익숙한 사람들은 자신이 큰돈을 지불하여 그린 초상화에서 자신의 얼굴이 어둠 속에 가려지는 것을 그다지 즐거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그의 작품은 매우 비싼 편이었고 의뢰인이 원하는 그림이 아닌 자신의 믿음대로 그림을 그릴만큼 그는 오만했다고 한다. 이 때문일까 화가로써 그의 실력은 점점 발달하였지만 그의 작품을 찾는 이들은 점점 줄어들었다. 그는 미켈란젤로에 비길 만큼의 천재적인 실력을 가지고도 결국 파산까지 하게 되었지만 죽을 때까지 상업적 그림보다는 자기가 원하는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전쟁과 역사를 견뎌낸 명작
만약 100년을 산다면 얼마나 많은 일들을 겪어낼까? 만나고 싶은 사람들, 만나고 싶지 않은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고 그와 함께 눈부시게 아름다운 날들과 가슴 시린 슬픔의 날들이 지나갈 것이다. 때로는 겪지 않아도 될 일들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 렘브란트의 <야간순찰>은 400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왔다. 이 작품은 군인들의 기상을 돋우기 위해 부대의 벽에 걸리기도 했고, 박물관에 소장되기도 했고, 어딘가에서는 채워야 하는 공간보다 너무나 거대하다는 이유로 그림의 양옆과 윗 아랫부분이 잘리기도 했으며, 소홀한 관리로 작품의 본질이 바뀌기도 했다. 세계 제2차 대전이 발발했을 때는 여러 번 바뀐 다양한 재질로 만들어진 통에 보관되어 특별히 제작된 금고 속에서 그 생명을 지켜냈다. 마침내 이 그림이 대중 앞에 다시 섰을 때는 자신의 삶을 비관한 누군가의 칼로 수없이 상처 입기도 하고 염산을 뒤집어쓰기도 했다. 이 모든 시련에도 불구하고 렘브란트의 <야간순찰>은 꾸준히 복원되고 보호되어 현재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하고 있다. 실제로 이 그림을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매료되어 한동안은 움직이지 못한다고 한다.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긴 세월을 견뎌낸 살아있는 역사의 앞에서 겸허해질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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