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이탈리아의 화가 주세페 아르침볼도는 야채와 과일로 그려진 초상화인 여름을 그려냈다. 그는 야채, 과일, 동물 등의 특이한 정물들을 배치하여 기괴하지만 아름다운 초상화들 완성했고, 이를 통해 시대를 앞서간 놀라운 상상력을 보여주었다.
야채와 과일로 그려진 초상화
기괴하게 생긴 여성이 옆을 보고 있다.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녀의 얼굴은 온통 여름의 과일과 야채들로 가득하다. 눈은 반짝이는 체리이고, 볼은 핑크빛으로 잘 익은 복숭아, 턱은 길고 갸름한 배, 오똑한 코는 싱그러운 오이, 그리고 입술은 붉은 체리와 완두콩이다. 아름다운 머리카락은 자두와 포도, 산딸기와 가지, 그리고 옥수수와 온갖 초록의 풀들로 가득하다. 그녀는 밀 이삭과 짚으로 아름답게 만들어진 옷을 입고 있는데 가슴에서는 우아한 아티초크가 솟아 나오고 있다. 옷에는 이 그림을 그린 주세페 아르침볼도의 이름이 적혀있고 그 아래로 이 작품이 완성된 년도인 1563년이 적혀있다. 이 작품은 이탈리아의 화가 주세페 아르침볼도의 사계절 중 여름이다. 그림이 그려진 16세기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시대로 미술 역사에도 개성을 강조하는 바람이 불기 시작한 때였다. 그래서 독특한 모습을 한 주세페의 작품들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폭발적으로 받기 시작했고 그는 심지어 황제의 궁정화가로 임명되었다. 주세페는 그림을 그려달라는 황제의 요청하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 형태로 각 계절에 어울리는 야채와 과일을 소재로 하여 초상화를 그렸다. 황제는 그가 사계절을 주관한다는 신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이 작품에 매우 흡족해했고, 똑같은 그림을 하나 더 그려서 다른 사람에게 선물했다고 한다. 독창적이고 조금은 기괴한 이 작품은 현재 오스트리아의 빈 미술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주세페, 시대를 앞서간 놀라운 상상력
살바도르 달리는 놀라운 창의성과 충격적인 표현력으로 20세기 미술사에 큰 획을 그었다. 만약 16세기에 달리가 태어났다면 그는 아마 주세페였을 것이다. 당시의 화가들이 그리던 정물화는 매우 정형화되어 있었다. 과일, 꽃, 화병 등 조형물을 고정해두고 그것을 최대한 세밀하게 묘사하여 진짜 같이 그려내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하지만 주세페는 이런 정형화된 정물화를 그의 재치에 따라 매우 설계적으로 조합하여 사람의 두상을 나타내는 초상화로 재창조해냈다. 그의 그림을 멀리서 보면 틀림없이 사람의 모습인데 가까이서 보면 완벽한 정물화들의 모임이다. 또한 주제에 따라 그와 관련된 식물, 꽃, 동물 등을 꼼꼼하게 매치하여 초상화를 그려내 세심하게 의미를 부여하였다. 주세페는 화가 집안에서 태어나 타고난 미술적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따라 프레스코화와 스테인드 글라스를 배워 성당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오스트리아의 황제는 그를 궁정화가로 임명했고 주세페는 많은 황제들에게 인정받으며 후에 프라하의 궁정화가로도 오래 사랑을 받았다. 사람들이 감히 생각해 보지 못한 방법으로 시대를 앞서간 놀라운 상상력을 보여준 주세페는 당시의 화가들 뿐만 아니라 4세기가 지난 후의 초현실주의 화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
기괴함이 아름다움이 되는 기적
인터넷에서 야채를 기르는 사람이라는 그림을 본 적이 있다. 괴상하게 생긴 남자의 얼굴이 그려져 있길래 특이한 농부의 초상화를 그린 건가 생각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모니터 가까이에서 그 그림을 다시 보았을 때 온갖 종류의 야채가 남자의 얼굴을 이루고 있었다. 각각의 야채들은 굉장히 정밀하게 표현되어 마치 바로 꺼내어 베어 물 수 있을 것 같이 생생했다. 보통 초상화라고 하면 한 인물의 생김새와 표정으로 그의 성격이나 직업 등을 대략적으로 유추할 수 있다. 하지만 주세페의 초상화는 재미있고 유쾌한 방법으로 그림의 주제를 알려주는 것 같았다. 그는 야채로 잔뜩 얼굴을 도배하고 야채를 기르는 사람이라는 제목을 붙이거나 온갖 꽃으로 얼굴을 표현하고 봄이라고 제목을 붙였다. 초상화의 일부이지만 각각의 정물화는 완벽하게 사물 하나하나를 묘사하고 있다. 주세페는 다른 사람이 상상하지 못하는 방법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의 작품은 그 낯선 모습에 간혹 기괴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주세페는 기괴함을 아름다움으로 만드는 기적을 보여주었다. 완벽한 정물화는 아름답지만 흔히 볼 수 있고 어딘가 심심하다. 완벽한 초상화는 고귀하지만 왠지 무겁고 어렵다. 하지만 주세페의 초상화는 재미있고 아름답다. 두 가지의 종류의 그림을 한 캔버스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롭고 경이롭다. 또한 그가 심어놓은 재미있는 의미들을 알아가는 것은 그의 작품을 보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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