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절규 : 공포와 불안의 핏빛 비명
- 에르바르드 뭉크, 어둠의 그림자가 지배한 삶
- 스크림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절규 : 공포와 불안의 핏빛 비명
해골처럼 앙상하게 마른 한 남자가 길 위에 서서 무언가에 크게 놀란 듯 얼굴을 감싸며 소리를 지르고 있다. 소리를 내지 못할 만큼 심한 공포감에 휩싸인 듯 그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의 괴로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자의 뒤로 다른 두 사람이 걸어가고 있다. 그 뒤로는 깊고 차가워 보이는 굽은 강이 흐르고 하늘은 이상하리만큼 붉다. 이 작품은 노르웨이의 화가인 에드바르드 뭉크가 그린 <절규>로, 1893년에 그려졌다. 에드바르드는 다른 방식으로 똑같은 그림을 몇 장 더 그려냈는데, 그중 하나에 이 그림과 관련된 이야기를 적어놓았다고 한다. 어느 날 에드바르드는 해 질 녘쯤 친구들과 함께 산책을 나갔다. 피오르드(빙하가 지나간 길에 바닷물이 흘러들어 가 생긴 해안지형) 주변을 걷고 있을 때에 갑자기 하늘이 붉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 붉음은 노을의 붉음이 아니라 핏빛의 붉음이었다. 그는 피곤함을 느끼고 펜스에 기댔는데 어둡고 푸른 피오르드 위로 피와 불의 혀가 보였다. 그의 친구들은 가던 길을 계속 갔지만 에드바르드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불안감으로 떨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자연 속을 지나가는 무한한 절규를 감지했다고 한다. 이 그림을 잠깐만 보아도 절규하는 그의 표정이 뇌리에 꽂히며 그날 저녁의 산책에서 그가 느꼈을 불안과 공포가 느껴진다. 총 4개의 <절규> 중 하나는 판매되었고 나머지는 노르웨이의 오슬로에 위치한 국립 미술관에 소장되어있다.
에르바르드 뭉크, 어둠의 그림자가 지배한 삶
에드바르드 뭉크는 그가 경험한 두려움을 표현한 <절규>라는 작품으로 유명해졌고 이 그림은 다양한 분야에서 패러디되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대작을 창조해 낸 위대한 그였지만 슬프게도 그는 언젠가 정신병이 자신을 지배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휩싸여 평생을 보냈다. 에드바르드의 어린 시절은 사랑하던 어머니와 누이의 죽음으로 꽤나 우울했다. 병적으로 경건했던 그의 아버지는 아내를 잃은 후 광적으로 변해갔고, 죽은 어머니의 이야기나 귀신 이야기를 자주 들어야 했던 에드바르는 악몽과 자신을 찾아올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자주 시달렸다. 몸이 자주 아팠던 탓에 학교를 가지 않고 집에서 학습하는 날들이 많았고 그래서 그는 그림을 그릴 시간이 있었다. 이렇게 미술의 길을 걷게 된 에드바르드는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를 자주 여행하며 폴 고갱, 빈센트 반 고흐 등의 영향을 받아 색채 사용법이나 형태의 단순화를 그의 그림에도 녹여냈다. 처음에 그는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그리는 화가가 되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의 가족에게 유전되고 있는 정신병이 언젠가 자신을 지배할 거라고 늘 생각했다. 그리고 남동생의 죽음과 여동생의 정신병, 자신이 겪고 있는 질병과 정신병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결국 그를 죽음의 미학을 그리는 화가로 만들어버렸다. 에드바르드 뭉크는 자신의 작품 뒤에 미친 사람만이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적었다고 한다. 그를 미치도록 괴롭히던 질병과 그로 인한 참을 수 없는 고통의 연속, 그 모든 것이 그를 몰아갈 수 있는 만큼 몰아가서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그의 가장 위대한 작품이 창조되었다.
스크림이 가득한 세상속에서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난 항상 스티븐 스필버그의 대작 <나 홀로 집에>를 본다. 그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주인공인 케빈이 아빠의 스킨을 얼굴에 바른 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악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놀랍게도 이 장면은 <절규>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다. 절규하는 모습의 가면을 쓰고 살인을 저지르는 자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스크림>도 이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다고 한다. 왜 수많은 작품 속에 패러디되며 <절규>가 재창조되고 있는 것일까? 에드바르드 뭉크의 <절규>는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느낄 공통적인 감정인 보이지 않는 '불안'을 눈으로 볼 수 있는 형태로 가장 잘 표현해 냈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것도 모른 채 그의 작품을 보면 노을이 질 무렵 푸른 강이 흐르는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산책하는 사람들 사이에 뭔가에 놀란 사람이 보인다. 절규하는 주인공만이 불안과 고통을 감지하고 있을 뿐 주변은 지극히 평화롭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누군가에게는 평화롭고 누군가에게는 악소리가 절로 나오는 피비린내 나는 두려움의 대상일 수 있다. 어떤 이는 에드바르드 뭉크가 공황발작을 겪은 경험을 이 그림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그의 친구들은 작품이 공개될 때까지는 아마도 그의 고통을 함께 느끼지는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 속에서 각자의 절규를 하며 살아간다. 스크림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나는 누군가의 절규에 얼마나 귀 기울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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