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북유럽의 모나리자가 되다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라는 제목을 모르더라도 이 작품을 보면 그녀를 언젠가 보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요하네 르 페르메이르의 이 작품은 그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으로 인해 '북유럽의 모나리자' 또는 '네덜란드의 모나리자'로 불린다. 그림을 보면 한 어린 소녀가 어둠 속에서 빛나는 눈으로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 눈이 젖어있는 것 같기도 하고 마치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나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소녀는 매우 신비롭다. 당시의 역사적 배경으로 볼 때(17세기, 네덜란드) 대부분의 귀족이나 부유층은 머리카락을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매력 어필의 한 수단으로 사용하였다. 하지만 이 소녀는 허름한 옷에 터번으로 보이는 푸른색과 노란색 천으로 미의 상징인 머리를 숨기고 있고 사연이 있는 눈빛으로 옆을 응시하고 있다. 그와는 모순적이게 그녀의 귀에는 그 당시 작품들에서 허영과 사치의 상징으로 그려지곤 했던 진주 귀걸이가 눈부시게 빛을 내며 걸려있다. 이 작품이 사랑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아무도 이 소녀가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으며, 어떤 사연을 가진 이인지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요하네스 페르메이르가 어느 시점에 이 그림이 그려졌는지도 알 수 없다. 다만 사람들은 이 그림에 당시 가장 비싼 색이었던 울트라 마린 물감이 사용된 점과 작가가 이례적으로 배경을 어둡게 하여(그는 보통 배경을 구체적이고 세세하게 그리기로 유명했다.) 인물이 강조된 점으로 미루어 보아 이 소녀가 작가에게 중요한 인물이었다는 추측을 한다. 구체적인 정보가 없지만 그 어떤 작품보다도 강렬한 사연을 지닌 작품은 후에 다양한 시, 노래, 소설과 영화를 만들어낸다. 현재 이 그림은 네덜란드의 헤이그에 있는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비밀의 화가
수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 작품을 그린 화가는 요하네스 페르메이르로 네덜란드 예술의 황금기였던 17세기에 활동하던 화가이다. 그의 이름이 낯선 것은 그의 작품이 37점 정도로 다른 화가들에 비해 적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사실상 그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 속 소녀처럼 페르메이르는 신비로운 존재였다. 그가 어떤 미술 교육을 받았는지, 누구의 제자로 화풍을 익히게 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의 아버지가 미술품을 거래했고 그와 함께 미술품 감정일을 하다가 아버지의 죽음 이후 업을 물려받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한 그가 당시 화가들의 모이었던 성 루가 길드의 조합원이었던 것으로 미루어보아 적어도 6년 이상의 화가 교육을 받았다고 추정한다. 그는 주로 실내에서의 평범한 모습들을 그리곤 했는데 인물과 배경, 심지어 작은 소품까지도 굉장히 구체적으로 묘사되어있어 역사의 기록으로도 큰 가치를 지닌다고 한다. 그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놀랍도록 치밀하게 묘사된 빛과 사물, 마치 당장 말을 걸어올 것 같은 인물의 모습들을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데 이는 색채와 빛을 조화롭게 사용하여 그림을 완성하려 했던 그의 노력을 보여준다. 그는 또한 카메라 옵스큐라(어두운 상자에 구멍을 뚫어 그리려는 대상을 벽에 거꾸로 비치게 하는 원리)를 사용하여 사실보다 더 사실적인 사진과 같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가 더 신비롭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처럼 사실적인 표현을 중시하는 그가 배경을 무시한 채 소녀만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에 있다. 그는 왜 소녀에게 이토록 특별했을까?
작은 캔버스가 주는 거대한 이끌림
소녀를 처음 만난건 대학시절 처음 들어보았던 영문학 수업시간이었다. 한 달 동안 읽어내는 과제로 주어진 책의 표면에 소녀가 있었다.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나에게 소녀의 얼굴은 꽤나 매혹적이었고 그녀가 나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너무 궁금해졌다. 이 소설은 소녀가 페르메이르라는 한 화가의 하인으로 살아가면서 겪은 이야기였다. 그녀는 가족의 생계에 도움이 되기 위해 화가의 화실을 정리하고 청소하는 일을 했고 그곳에서 겪는 갈등과 사랑 그에 따른 소녀의 고뇌가 소설에 묘사되어있었다. 작가는 페이 메이르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를 보고 그와 소녀를 비극적인 사랑 비슷한 감정으로 연결 지으려고 한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상상하는 소녀는 조금 다르다. 나를 응시하는 소녀의 눈은 촉촉하게 젖어있는 듯 하지만 희망으로 반짝이고 어색하게 벌린 입술 같지만 얕은 미소가 있다. 소녀는 이제 갓 어린아이를 벗어나 그 마음속에 희망이 가득하고 이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다. 금방이라도 밝게 웃으며 내게 온갖 질문들을 퍼부어 낼 것만 같다. 이 그림이 그려진 캔버스는 44.5cm × 39cm 로 비교적 작은 캔버스에 속한다. 그래서 근래에는 이 작은 캔버스를 부분 부분 카메라로 찍어 확대한 작품까지 만들어졌을 정도이다. 하지만 이 작은 캔버스에 그려진 작은 소녀는 이름도 없이 수많은 이들을 매혹시켰고 지금까지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어떤 이유로서든지 이 소녀가 오래오래 사랑받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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