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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과 검은색의 구성 : 제임스 휘슬러

by honeykbongbong 2022. 12. 15.

제임스 휘슬러의 <회색과 검은색의 구성>은 어머니의 초상화이다. 그는 주제를 표현하는 미술이 안인 미술을 위한 미술은 하기 위해 노력했다. 사람들의 비판 속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지켜낸 용기로 그는 추상주의의 시작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목차

  • 어머니의 초상화
  • 미술을 위한 미술을 하다
  • 자신의 신념을 지켜낸 용기 

제임스 휘슬러 <화가의 어머니>

어머니의 초상화 

흑백 화면을 보는 듯 그림이 회색과 검은색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심에는 검은 드레스를 입은 노년의 여인이 두 손을 모은 채 앉아있다. 그녀는 얼굴에 주름이 가득하지만 선명한 눈썹과 눈, 야무지게 꽉 다문 입술, 그리고 흐트러짐이 없는 단정한 머리로 보아 분명한 성격의 여성으로 보인다. 방의 왼편에는 흰색과 회색의 그림이 그려진 검은색의 커튼이 보인다. 벽에는 직사각형의 각진 액자 두 개가 보인다. 이 작품은 미국의 화가 제임스 휘슬러가 자신의 어머니를 그린 <회색과 검은색의 구성 : 화가의 어머니>다. 이 그림이 그려진 배경에는 어머니가 있다. 그녀는 자신의 아들이 화가가 되길 원했고 그의 교육을 위해 프랑스와 런던으로 함께 갔다. 하지만 제임스는 당시 특출 난 화가가 아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그의 아들을 지원했다. 어느 날 작품의 모델이 나타나지 않았고 어머니는 자신이 대신 모델이 되어보겠다고 했다. 원래 제임스는 서있는 모델을 그리려고 했지만 나이가 지긋한 어머니를 위해 앉아 있는 모습으로 그렸다고 한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 그림의 제목이 어머니가 아닌 회색과 검은색의 구성이라는 것이다. 그는 검은색과 회색의 조화를 통해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했다. 또한 방의 구도를 보면 직각으로 떨어지는 커튼과 액자들, 그리고 바닥과 둥근 곡선으로 표현되는 어머니의 얼굴과 드레스가 놀랍도록 조화롭다. 그는 색과 형태의 조화를 표현하여 미를 추구하고자 한 것이었지만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이 그림은 어머니의 모습 때문에 유명해졌다. 이 그림이 전시되었을 때 사람들은 작품 속 어머니의 모습에 매료되었다. 어머니로써 살아온 세월의 무게가 그녀의 모습에서 너무나 절실하게 표현되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의 바람대로 이 작품을 통해 그녀의 아들은 유명한 화가가 되었다. 현재 이 작품은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미술을 위한 미술을 하다

어린 시절의 제임스 휘슬러는 감정적이고 의욕이 없었다. 그의 부모님은 그림을 통해 그가 차분해지고 무언가에 집중할 수 있는 힘이 생겨날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부모는 그에게 미술을 가르쳤고 그 덕에 제임스는 프랑스와 런던 등을 오가며 미술을 배울 수 있었다. 제임스는 수완이 좋았고 화려한 옷을 입는 것을 좋아했으며 다양한 화가들과 교류했다. 반면에 그는 매너리즘적 성향이 강했고 놀라운 감수성으로 스스로를 가냘픈 나비로 표현했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을 보면 서명 대신 나비가 그려져 있다. 음악 또한 사랑했던 제임스는 그의 미술이 음악을 닮길 바랬다. 그는 음악이 창조된 배경을 설명하지 않고도 많은 사람들에게 음악 그 자체로 감동을 준다는 것에 집중했다. 그때까지의 회화들은 주제가 있고 그 주제를 표현하는 데에 화가들이 집중했다. 하지만 제임스는 미술을 위한 미술을 하기로 결심했다. 선과 도형, 색과 조형물들이 서로 조화롭게 그려져 그 자체로 감동을 주길 원했다. 그의 작품에서 인물은 그저 하나의 조형물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그의 작품들은 검은색과 회색의 구성, 흰색의 심포니, 검은색과 금색의 야상곡과 같이 단순한 제목을 가지고 있고 이해를 돕는 부제가 함께 쓰여 있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 회색과 검은색의 구성 : 화가의 어머니>도 어머니가 주인공이 아닌 공간을 채운 회색과 검은색의 조화로움, 직선과 곡선의 조화로움이 주인공이다. 하지만 당시의 사람들은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렇게나 대충 그린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신념을 지켜낸 용기

미술사에 획을 그은 사람들은 모두 용기가 있는 자들이었다. 마약사범으로 오해받을 만큼 특이했던 살바도르 달리는 초현실주의를 시작했다. 작품이 어린아이의 장난질처럼 보인다며 혹평을 받던 파블로 피카소는 입체주의의 시작이 되었다. 미술을 위한 미술을 해야 한다는 제임스 휘슬러 또한 많은 사람들의 비판을 감수해야 했다. 그의 작품 중 런던의 밤하늘을 표현한 <검은색과 금색의 야상곡>은 그와 당시의 유명한 비평가였던 존 러스킨과의 고소사건의 발단이 되었다. 런던의 전시회에서 그의 작품을 본 존 러스킨은 제임스를 물감통을 던져 그린 그림을 고가에  파는 사기꾼이라고 했고 제임스는 그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오랜 시간 진행된 재판에서 제임스는 승소했지만 결국 파산하여 그의 집과 작업실을 모두 날렸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평생을 일해 이룬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가? 하지만 그가 힘들게 지켜낸 신념 덕분에 추상 미술의 세계가 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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