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Bal du moulin de la Galette : 오귀스트 르누아르

by honeykbongbong 2022. 12. 17.

Bal du moulin de la Galette는 프랑스의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작품으로 인상주의 최고의 걸작으로 불린다. 풍경보다는 사람들을 인상적으로 묘사한 르누아르는 빛과 색채의 마법사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화려한 색채의 그림을 그렸다. 그는 아름다움에 대한 끝없는 목마름으로 화가로 프랑스 미술의 품격을 높였다.   

 

목차

  • 인상주의 최고의 걸작
  • 르누아르, 빛과 색채의 마법사
  • 아름다움에 대한 끝없는 목마름 

오귀스트 르누아르 Bal  du moulin de la Galette

인상주의 최고의 걸작

무도회가 열린다. 셀 수 없이 많은 젊은 남녀가 여기저기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무도회의 중심에는 행복한 표정으로 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아름다운 샹들리에가 곳곳에서 춤을 추는 이들을 비추고 있고 푸른 나무 사이로 따스한 햇빛이 내리쬔다. 나무가 만들어준 그늘들 아래로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젊은이들이 보인다. 그림을 보고 있으면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새들의 지저귐, 그와 함께 어우러지는 낭만적인 재즈가 흘러나오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이 작품은 1876년에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에 의해 그려진 Bal du moulin de la Galette이다. 그림의 장소인 물랭 드 라 갈레트는 파리의 몽마르트르 주변에 있던 무도회장이었다. 당시 노동자 계급의 사람들은 주말이 되면 좋은 옷을 입고 이곳에 모여 시간을 보냈다. 그들은 신나는 음악에 춤을 추고 서로 모여서 먹고 마시며 주중에 쌓인 피로를 날려버린 것이다. 인상파 화가였던 르누아르는 이곳의 생기 있는 모습을 그의 그림에 담고 싶어 했고 몽마르트르 주변으로 이사를 가서 지낼 만큼 열정적이었다. 그는 매주 그곳에 캔버스를 들고 가 그림을 그렸고 빛과 그림자의 모습도 세세하게 관찰하여 그려냈다. 이 그림이 인상주의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이유는 화려한 색감과 생동감 있는 표현도 있지만 이전과는 다른 빛의 표현에 있다. 르누아르는 나무 사이를 뚫고 들어오는 빛의 모습과 샹들리제가 내뿜는 빛의 모습을 여기저기 반사시켜 사람들의 옷과 바닥에 흩어지게 표현했다. 이는 마치 물랭 드 라 갈레트에 서있는 것처럼 생생한 느낌이 들게 한다. 파리지앵의 감성을 느끼게 하는 이 작품은 현재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되어있다.     

르누아르, 빛과 색채의 마법사

아름다운 색의 구성, 빛과 그림자의 완벽한 조화는 르누아르의 작품을 상징하게 되었다. 화려한 색채와 사실적인 표현으로 인상주의 시대를 아우르던 르누아르는 사실 좋은 교육을 받으며 자라난 화가는 아니었다. 그는 가난한 양복점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노래에 소질이 있었던 그는 음악가의 꿈을 꾸었지만 가정형편으로 인해 13세의 어린 나이로 그의 형을 따라 도자기 공장에 취직하게 된다. 그곳에서 도자기에 그림 그리는 일을 하면서 색채에 대해 처음으로 눈을 뜨게 된다. 그리고 화가의 꿈을 가지고 성장하게 된다. 성인이 되어 그가 만난 친구들은 모네, 세잔과 같은 인상파 화가들이었고 그들은 함께 작업하며 인상주의 운동을 부흥시켰다. 대부분의 인상파 화가들이 야외에서의 풍경을 그들의 주제로 선택한 것에 비해 르누아르는 야외에서의 인물을 주제로 택했다. 그의 걸작으로 불리는 Bal du moulin de la Galette에서도 그는 빛과 그림자를 통해 사람들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고 그 사람들이 만들고 있는 분위기를 그림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놀라운 것은 그의 그림에 그려진 인물들의 얼굴이나 옷 등이 정밀하게 묘사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색채의 경계를 흐리게 하는 것을 택했고 인물의 표정이나 몸짓의 정밀한 묘사보다는 색감의 정확한 묘사를 택했다.    

아름다움에 대한 끝없는 목마름

인상주의 화가로 데뷔하여 놀랄만한 작품들을 많이 그려낸 르누아르는 어느 날 인상주의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이탈리아로 떠난 여행에서 그는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가 그린 그림들을 보았고 자신이 걸어온 인상주의의 길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그는 자신이 인상주의의 길을 갈 만큼 가 보았는데 결국 자신은 그림을 그리지도 색을 칠하지도 못 한하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다시 고전주의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그의 화풍은 달라지기 시작한다. 색과 색의 경계가 불투명하고 선이 분명하지 않았던 그의 그림에서 분명하게 구분되는 선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색채의 활용에 뛰어났던 그는 자신의 특기를 그대로 가지고 고전주의로 들어갔다. 그래서 그의 그림들은 고전적이지만 현대적인 느낌의 우아함을 가지게 되었다. 자신의 젊은 날의 열정을 쏟아부은 것을 뒤로하고 새로운 것을 배워 익힌다는 것은 아름다움에 대한 끝없는 목마름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미술의 얼굴은 수년의 시간을 보내며 꾸준히 변화해왔다. 보이는 것 그대로를 거침없이 드러내는 노골적인 얼굴이 있었는가 하면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는 신비로운 얼굴도 있었다. 또한 보이는 것을 새로운 형태로 나타내는 기이한 얼굴이 있는가 하면 고통을 아름다움으로 바꿔낸 인고의 얼굴도 있었다. 역사와 시대를 지내며 그 속에 있는 아름다움을 끊임없이 끄집어내려고 하는 노력이 이와 같이 미술을 다양하게 발전시킨 것이다. 수많은 화가들의 목마름은 앞으로의 미술의 얼굴을 바꿔놓을 것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