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하게 빛나는 황금빛 키스
눈이 부신 황금빛으로 캔버스가 가득하다. 그 캔버스의 중심에는 사랑하는 두 사람이 있다. 남자는 여인의 머리와 얼굴을 두 손으로 잡고 그녀의 볼에 키스하고 있고, 볼이 발갛게 달아오른 여인은 그 키스가 너무나 황홀하고 달콤한지 눈을 감고 자신을 감싼 그의 손을 잡고 있다. 두 사람은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꽃들로 가득 차 있는 언덕의 끝에서 부둥켜안고 있고 마치 그곳은 이 세상의 마지막 같다. 이 작품은 <키스, The Kiss>로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화가인 구스타프 클림트의 유화이다. 클림트는 황금색의 금박지와 은박지, 금색 물감을 이용하여 한창 그림을 그리던 1907년과 1908년 사이에 이 화려하고 매혹적인 그림을 그려낸다. 그림의 중심이 되는 두 인물 모두 금색의 옷을 입고 있고 그 뒤로 또 다른 금색풍의 배경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마치 하나의 큰 뭉치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의 차림새를 유심히 살펴보면 확연하게 그 둘을 구별할 수 있다. 남자는 초록잎의 나무덩굴로 만든 머리띠를 하고 있고 그의 옷은 흰색, 회색, 검은색의 직사각형들이 무질서하게 늘어져있다. 한편, 여자의 머리는 차분한 색상의 꽃들로 수놓아져 있고 그녀의 옷은 화려한 색의 크고 작은 원들로 덮여있다. 즉, 차갑고 단조로운 색상과 거친 느낌의 도형을 이용하여 남성성이, 화려한 색상과 부드러운 느낌의 도형을 사용하여 여성성이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복제되고 있는 작품 중 하나가 된 클림트의 <키스>는 현재 오스트리아의 벨베데레 궁에 소장되어있다.
클림트, 사랑을 그리다.
<키스>를 그린 구스타프 클림트는 여성의 관능적인 모습이나 자극적인 성의 형태를 사실적이고 노골적이게 표현하기로 꽤나 유명한 화가이다. 그의 의도가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으나 그의 작품들은 예술과 외설 사이의 밀고 당기기가 팽팽하다. 클림트는 미술학교를 다니던 어린 시절부터 많은 화가의 눈에 띌 만큼 출중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고, 덕분에 공공건물에 장식화나 조형물을 설치하는 프로젝트에 많이 참여하곤 한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와 형제가 사망한 후 인생의 침체기를 겪고 그의 화풍 또한 많은 변화가 생긴다. 그의 작품들의 가장 큰 특징으로 여겨지는 황금색의 두드러진 사용이 이때부터 나타나기 시작했고 삶과 죽음, 성과 사랑에 대한 강조가 분명해지기 시작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의 작품들은 그가 겪은 사랑의 실체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는 평생을 살며 단 한 번도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그가 죽은 후 그의 사생아를 낳았다는 여성들이 많았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그는 여성을 모델로 그림을 그릴 때 그들에게 관능적이고 적나라한 포즈나 표정을 요구했고 심지어 그들과 육체적인 사랑도 나누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육체적인 사랑일 뿐 정신적인 사랑은 아니었다. 그에게는 또 다른 부류의 사랑을 나누는 여성들이 있었는데 그들과는 육체적 사랑이 전혀 없이 편지를 나누며 정신적인 사랑을 했다고 한다. 그의 이러한 경험들 덕분에 클림트의 작품들이 누군가에게는 예술적으로 다른 누군가에는 외설적으로 보이는 것이 아닐까 한다.
기이하게 아름다운 사랑의 기억
올해 초, 신안의 작은 섬으로 가족여행을 갔다. 그곳에서는 요즘 한창 유행하고 있는 미디어 아트전이 작게 열리고 있었고 그곳에 방문한 나는 클림트를 처음 만났다.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전시실에서 잔잔한 세레나데가 흘러나오고 사방으로 은은한 금빛이 돌기 시작했다. 그 빛은 조금씩 진해지더니 온 전시실이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밝게 빛났다. 그 속에 이 연인들이 있었다. 그 둘에 대한 내 첫인상은 이랬다. 기묘하다. 분명 사랑하는 연인들인데 내 눈에는 뭔가 이상했다. 여자의 얼굴을 잡은 남자의 손은 다소 강압적으로 보였고, 무릎 꿇은 채 키스를 받는 여자는 남자에 대해 저항하는 것 같은데 너무 평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심지어 황홀해 보이기도 했다. 한편 이들을 둘러싼 아우라는 어색할 정도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클림트는 도대체 왜 이런 모순적인 그림을 그렸을까? 그의 삶을 돌아보니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그는 여인에 대한 거칠고 강한 욕망을 가지고 있었고 표출할 수 없는 그 욕망이 자신의 그림에 그려 넣은 남성의 모습을 통해 표현된 것처럼 보인다. 또한 여인은 관능적이고 원초적인 미로 남성을 사로잡는 무서운 힘의 소유자지만, 동시에 부드럽고 연약하여 손에 닿기에도 아까운 성스러운 존재로 여기던 클림트의 마음이 고스란히 표현된 것 같다. 클림트는 자유로운 사랑을 했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사랑에 대한 그의 신념을 자신의 그림에 녹여냈다. <키스>에서는 공유할 부분이 없어 보이는 에로스와 플라토닉, 이분적인 사랑의 두 모습이 찬란한 황금빛으로 둘러싸여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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